[기고 김준철] 플라잉 와인메이커(Flying winemaker)
와인업계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플라잉 와인메이커(Flying winemaker)”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했다. 플라잉 와인메이커는 전 세계를 누비며 여러 대륙의 포도밭과 와이너리에 기술을 전수하는 와인양조학(Enology) 전문가들이다. 독립 컨설턴트로 일하든 대기업의 일원으로 일하든, 플라잉 와인메이커는 우리가 즐겨 마시는 고급 와인을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플라잉 와인메이커(Flying winemaker)”라는 용어는 영국 출신의 ‘토니 라이스웨이트(Tony Laithwaite)’가 와인업계에서 경험 많은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전문가들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로, 출발은 프랑스 와인생산자협동조합에서 포도수확과 와인양조를 위해 남반구인 호주의 와인양조 기술자들을 고용하면서 시작되었다.
북반구의 바쁜 수확시기에 비교적 한가한 남반구의 기술자들을 활용한 것이다. 이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와인양조에 혁명을 일으켜, 다양한 지역의 포도재배와 와인양조 기술과 스타일의 융합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호주 출신이거나 호주에서 교육받은 와인메이커들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호주 출신이면서 포르투갈에서 ‘브라이트 브라더스(Bright Brothers)’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피터 브라이트(Peter Bright)’로, 그는 유럽, 미국, 남미, 호주 전역에서 와인 컨설턴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플라잉 와인메이커의 원조인 ‘토니 라이스웨이트(Tony Laithwaite)’는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칠레,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의 와이너리를 방문하면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53개 이상의 와인 지역을 '지도'에 올렸다. 또 영국의 양조학자인 ‘휴 라이먼(Hugh Ryman)’은 아버지가 프랑스 ‘베르즈라크(Bergerac)’에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어서 일찍이 와인양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보르도 대학에서 양조를 공부하고, 이후 와인 양조기술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세계를 누비면서, 플라잉 와인메이커로서 자리를 잡았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플라잉 와인메이커는 13개국 100개 이상의 와이너리에 컨설팅하는 보르도 포므롤(Pomerol) 출신의 ‘미셸 롤랑(Michel Rolland)’과 14개국 100개 이상의 와이너리에 컨설팅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안토니니(Alberto Antonini)를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플라잉 와인메이커는 와인산업을 변화시켜 와인양조 전문가들이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지역에서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 데 기여를 했다. 와인양조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식은 전 세계 와인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세계 각지의 와인메이커 간의 혁신과 협업을 촉진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플라잉 와인메이커가 각 지역의 테루아르나 역사보다 와인메이커의 지식과 취향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서 와인 스타일의 획일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세계적으로 와인의 품질을 향상시켰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 나는 젊었을 때 어느 포도든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와인 만들기의 80 %는 포도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 대릴 그룸(Daryl Groom, 호주의 플라잉 와인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