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경계해야 할 극단주의와 포퓰리즘
근래의 세계적인 이슈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점점 집단화로 정치세력이 되려고 하고, 정치가들은 무분별하고 근시안적인 포퓰리즘으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극단주의(極端主義)는 어떤 특정한 이념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상태로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극단주의는 이데올로기, 정치, 종교를 비롯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떤 특정한 이념에는 사회에서 인정되는 평균적 통념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무비판적인 독단과 독선에 빠지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그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급진주의나 종교의 근본주의, 원리주의, 테러리즘 등이 극단주의에 속한다. 또한 지나치게 원리, 원칙에 얽매어 융통성이 결여된 교조주의(敎條主義)도 극단주의와 다르지 않다.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극좌, 극우도 극단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를 혐오하는 일본의 ‘혐한(嫌韓)주의’도 극단주의로 볼 수밖에 없다.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이 추종하는 특정한 이념에 완전히 매몰돼 다른 이념이나 견해, 사회적 통념 등을 배척하고 적대시하며 공격적으로 맞선다. 아울러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 또는 편견을 남들에게 동조할 것을 강요하는가 하면, 어떤 형태로든 행동으로 표출해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킨다. 더욱이 이들은 감정에 치우쳐 특정한 이념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대부분 확고한 신념이나 정체성이 부족하고 자신의 주장에 합리성이나 논리성이 결여돼 있어서,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보다 남들의 주장이나 견해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극단주의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집단화하려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소속감과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개인으로서는 부족했던 집단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그와 함께 자신들의 집단을 세력화시켜, 집단시위, 반대세력 공격 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테러행위의 대부분이 그들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집단은 매우 폐쇄적이며 규범이나 규율이 엄격하고, 상명하복의 분명한 수직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신조(信條)에 집착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획일화된 사고와 가치관을 공유하고 남들에게 강요하고, 구성원들은 대체적으로 자기애(自己愛)에 빠져 있으며, 과시적이고 오만하며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도 특징이라고 한다.
민주사회의 특성은 다양성이다. 누구나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견해가 있으며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남들의 주장은 모조리 배척하고 오직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고 정의이며 최선이라고 외치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편견이며 독선이다. 편협한 극단주의가 판을 칠수록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BC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양대 세력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패권 다툼을 벌였다. 그 대표적인 전쟁이 역사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다. 무려 17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이 전쟁에서 아테네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병력을 총동원했다. 그들의 역사상 최대의 선단을 꾸리고 뛰어난 전략가로 평가받고 있는 알키비아데스(Alcibiades)가 총지휘를 맡았다. 스파르타는 위기에 몰렸고 누가 보더라도 아테네의 승리로 전쟁이 끝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랄까, 전혀 뜻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졌다.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에서 왼쪽에 투구를 쓴 자가 알키비아데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한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패배로 이끌었다.
아테네 해군의 총사령관 알키비아데스가 신성모독을 했다는 뜬금없는 풍문이 아테네에 펴졌던 것이다. 당시 신성모독은 최고의 죄악이었다. 성난 아테네 시민들이 전쟁터로 향하던 알키비아데스를 당장 소환했다. 아테네로 돌아가면 사형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아테네로 돌아가는 도중에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위기에서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스파르타는 알키비아데스가 일러주는 전략을 적극 활용해서 아테네의 대선단(大船團)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결국 아테네는 전쟁에서 참패했으며 멸망의 위기를 맞고 말았다. 대중의 맹목성과 대중에게서 버림받은 엘리트의 조합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대중영합과 인기영합의 포퓰리즘이 저지르기 쉬운 위험성을 잘 말해주는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포퓰리즘(populism)은 캠브리지 사전에 따르면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과 활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populism은 라틴어의 popul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민, 대중, 민중(民衆)을 뜻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지배층이자 기득권층인 엘리트(귀족)보다는 ”절대다수의 대중(人民)을 위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펴려는 정치사상“(大衆追隨主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념적으로 만민평등을 주창하는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인민에게 최고의 가치를 두고, 인민들이 엘리트의 부패와 권력남용 등으로 배신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는 점, 현재의 엘리트(지배계층)를 인민들을 위한 새로운 지도자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 등이 포퓰리즘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비슷하다는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아무튼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한다면, 인류가 만들어낸 정치체제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민주주의의 결함이 포퓰리즘이기도 하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에서 포퓰리즘이 하나의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그 때문에 아테네가 멸망의 길을 걸어야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근래에 와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치열하게 대립하며 냉전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포퓰리즘의 사회주의적 요소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적 요소 때문에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포퓰리즘은 19세기 말엽에 와서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지니고 있는 순수성과 본질보다 부분적인 일부요소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기형적인 형태로 재등장한 것이다. 정치적 신념조차 애매한 정치인들이 오직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 승리하려는 얄팍한 대중영합주의, 인기영합주의로 변질된 것이다.
대중영합주의, 인기영합주의에는 필연적으로 몇 가지 문제가 뒤따른다.
첫째는 국가발전을 위한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당장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무계획적이고 단기적이며 가시적인 선심정책들을 남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자, 농민 등, 상대적 약자들의 지위향상과 처우개선,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대중들이 좋아할 각종 서민복지향상을 쏟아놓는 것이다.
둘째, 포퓰리즘의 근본적 특징을 이용해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이 나라의 주인공인데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국민들을 억압하고 주인행세를 한다며 적(敵)을 설정해 놓고 그들을 향한 적대감을 부추긴다. 그 주요대상은 집권층, 엘리트, 부자 등 서민들보다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다. 한 마디로 이는 양극화 전략이다.
이러한 대중영합주의는 노동자, 농민 등, 억압받고 있는 민중의 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 민주주의로 위장한 사회주의와 별 차이가 없다. 아무튼 대중들의 격렬한 분노표출과 열렬한 지지를 얻어 당선되고 집권하게 되면, 한동안 인기를 얻지만 곧바로 온갖 난제들에 부딪치는 것이 인기영합주의다.
먼저 자신들이 설정했던 적대세력을 어떤 형식으로든 처단해야 대중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군림했던 기득권 세력도 만만치 않다. 그리하여 국가발전보다 치열한 정치적 공방전에 휩쓸려 국가와 사회가 큰 혼란에 빠진다. 그 다음 구체적인 대책없이 마구 쏟아놓았던 숱한 복지정책들을 실행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그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결론은 간단하다. 결국 세금을 올려야 한다. 또한 많이 가진 자들을 압박해 많이 내놓게 해야 한다. 그를 위해 온갖 규제로 옥죄면서 재산축적과정을 철저히 추적, 불법적인 행위들을 노출시켜 처벌하거나 부당한 이득을 내놓게 해야 한다. 그 때문에 국가와 사회는 더욱 혼란과 갈등에 빠져버린다.
중남미의 대표적인 포퓰리즘인 ‘페론주의’ 창시자 후앙 페론(우)과 두 번째 부인 에바 페론(좌)
그 좋은 본보기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과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일부국가들이다. 포퓰리즘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집권한 정치세력이 적대세력과의 치열한 투쟁으로 큰 혼란을 야기시키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민복지를 파격적으로 무리하게 확대해 나가다가 IMF 등으로부터 큰 빚을 지게 되고, 마침내 모라토리움(moratorium), 즉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던 것이다.
극단주의는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안해서 주체성과 방향성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확산돼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속성이 있다. 대중영합주의로서의 포퓰리즘은 앞서 소개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경우처럼 즉흥적이고 맹목적인 대중의 판단에 휩쓸리거나 대중을 그릇되게 유도하는 거짓선동의 우려가 크다. 그 어느 것도 막힘이 없어야 할 국가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정자들은 확고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대중의 인기와 상관없이 꿋꿋한 신념으로 국가와 민족을 이끄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