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원 작가, 독서지도사 [사진=더코리아저널]


[변대원 독서일기] <냉장고를 부탁해>가 알려준 사색의 힘

독서와 글쓰기를 강의하다 보면 가끔 가장 기본적인 단어에 대한 정의가 결국 전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독서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이지만, 저는 강의 때 독서는 '나 자신을 존중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정의합니다. 생각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생각을 하지만, 저마다 그 생각의 방향과 깊이는 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단어의 의미가 결정됩니다.

어제 수업에 참여하시는 작가님께서 책을 읽다가 문득 '사색(思索)이 뭘까?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 뭘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 멋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늘 생각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이 무엇인지 올바로 정의하지 않고 있고, 깊이 생각한다는 것 역시 그냥 생각을 좀 더 많이 하는 것쯤으로 여길 뿐 진지하게 여기진 않거든요.

그런데 '깊이 생각하는 것이 뭘까?'라고 묻기 시작했다는 것은 생각한다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과정임과 동시에 스스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으로 한걸음 나아갔음을 의미하니까요.

저 역시 그 질문을 받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사색이란 무엇일까 하고요.

저는 맛있는 요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가 대히트를 치고 나서 최근 JTBC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시즌 2로 리부트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출연자의 냉장고에 들어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출연자가 원하는 니즈에 맞춰 최상의 요리를 15분 만에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셰프들은 똑같은 냉장고에서 같은 재료를 보고도 각자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백미인데요. 그 형태가 참 우리 삶과 닮았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생각의 재료들을 만납니다. 말 그대로 재료입니다. 마치 재료는 어디에나 있지만, 요리를 할 줄 모르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거나 그냥 그 재료 자체로 먹어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굳이 어려운 요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라면만 해도 물 550ml를 냄비에 끓이고, 면과 스프를 넣고 3-4분 정도 익혀서 먹는 이 간단한 레시피조차 방법을 모르면 그냥 뿌셔뿌셔처럼 먹는 수밖에 없죠.

우리 일상의 재료들도 누군가에겐 글감이 되고, 사업의 기회가 되고, 대화의 실마리가 되고, 성장의 동기가 될 수 있지만, 그 재료들을 요리하는 방법을 모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색은 요리입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일들을 누군가는 그냥 흘려보내고, 누군가는 자기 삶의 재료로 삼습니다.

그렇게 모인 재료들을 다듬고, 익히고, 볶아서 요리를 완성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2명의 셰프가 한 명을 위해 각각 요리를 만들어 내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맛이 아닙니다. 냉장고의 주인인 출연자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에 대한 니즈파악입니다.

사색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깊이만 생각하는 건 소용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사색의 방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고기라도 어떤 경우에는 육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푹 삶아야 하지만, 구워 먹을 때는 너무 많이 익히면 질겨지기 때문에 빠르게 익혀야 하는 것처럼 사색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최근에 제가 쓰고 싶은 책 한 권을 구상한 적이 있었는데요. <7분 몰입독서의 기적>이라는 주제입니다. 여기에는 3가지 메인 재료가 들어가는데요. 보시다시피 '7분'과 '몰입' 그리고 '독서'입니다.

저는 독서에 대한 콘텐츠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다 보니 제 생각의 주방에는 늘 독서라는 나무도마가 놓여 있고요. 요즘 같은 숏폼 시대에는 긴 시간 독서하는 것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구체적으로 제안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잡은 키워드가 '7분'입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의 독서를 제안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추가로 '몰입'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렇게 요리의 방향만 분명히 잡아도 나머지는 제법 수월해집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생각을 바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 "왜 7분인가?" : 복잡하고 어려운 독서 대신 짧지만 효율성 높은 독서를 제안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 "왜 몰입이 중요한가?" : 긴 독서든 짧은 독서는 결국 '몰입'하는 상태에서 의미 있는 사고의 확장이 가능해짐

- "고작 7분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 절대적인 시간은 짧지만, 실제로 7분 동안 빠르게 속독할 수 있는 방법과 7분 동안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쉽게 독서를 시작할 수 있게 돕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깊이 있는 독서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듦

이런 식으로 사색을 이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제법 그럴싸한 목차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어떤가요? 독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맛보고 싶은 사색요리 아닌가요?

이처럼 사색은 내가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을 바탕으로 한번 만들어 놓으면 언제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꼭 완성된 요리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마치 마늘을 사다가 왕창 다져놓고 지퍼백에 나누어 담아놓은 것처럼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게 재료를 다듬어 놓은 것도 사색으로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30대 초반에 영업을 할 때 성과가 좋았었는데요. 그때의 경험으로 얻었던 사색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업하는 사람이 '영업'을 하면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상품도 어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생각해 보니 사람이든, 상품이든 그것을 통해 결국 '도움'받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면 나는 항상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만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모든 요리에 한 조각 들어가는 다진 마늘 같은 사색이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는 계약의 크고 작음을 계산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나와 만나는 고객들에게 대화와 관심이 필요하면 대화를, 조언이 필요하면 조언을,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를 드렸고, 내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제안서만 드릴뿐 전혀 판매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만나는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생기게 되었고, 신뢰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고객에게 가장 좋은 상품을 제안하여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제안한 상품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상품이었다는 걸 확인한 고객에게는 더 큰 신뢰를 얻어 더 많은 소개를 받기도 하였고요. 사색으로 다져놓은 마늘 조각 덕분에 어떤 만남에도 풍미를 더하는 재료를 얻은 셈이랄까요.

이처럼 사색이 재료를 다듬어 내가 삶을 더 맛있게 만드는 과정이라면, 독서는 내가 시도해 보지 못한 더 다양한 요리와 맛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독서를 많이 해서 다양한 재료가 많더라도 그걸 제대로 요리할 줄 모르면 소용없는 것이겠죠.

저마다 제한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만들어 내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처럼 내 삶의 주어진 재료들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내 삶은 어떤 요리이고 어떤 맛을 내고 싶은지 다시 사색해 봅니다.

[사진=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