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원 작가, 독서지도사 [사진=더코리아저널]
[변대원 독서일기]짜장면과 헬스장
운동을 꾸준히 했지만, 체중이 오히려 늘었다. 근육이 붙었을까 기대했지만, 솔직히 거울 속 내 모습은 살크업 쪽에 가까웠다.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 하나를 되새겨보자면, 체중을 줄이는 건 운동이 아니라 식단에 달려있다. 알면서도 계속 바쁘고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미뤘을 뿐.
오늘은 외부 일정이 있어 다녀오느라 점심식사를 3시가 넘어서 했다. 건강하고 맛있게 먹고 사무실에 와서 일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늦게 먹은 덕분에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어떤 영상에서 본 짜장면 먹는 장면에서 그만 꽂혀버리고 말았다. 다들 경험으로 알고있듯, 짜장면의 유혹은 강하다. 짙은 검은빛 윤기를 머금은 짜장면 한 젓가락 먹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그 짜릿한 단맛과 고소한 향, 뜨끈한 면발이 상상 속 미각을 자극했다. 마치 면발들이 춤을 추듯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이 2개가 남아있었다. 저녁금식과 운동이다. 점심을 늦게 먹기도 했고, 배도 고프지 않으니 아주 유리했지만 짜장면의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거의 무언가에 홀린 듯 근처 단골 중식당으로 향했다. 거의 식당에 도착할 무렵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아, 지금 저녁을 먹으면 오늘 해야 할 일 2가지를 모두 못하게 되겠구나.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졌고, 결국 불과 10m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서서 곧장 헬스장으로 향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어쩌면 우리가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아서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이유는 내일 오전에 미팅 전까지 자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일은 하기로 하면 잘하는 일이 있는 반면, 운동이나 식단관리는 여전히 나에게 힘든 영역이다.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런 기분을 알기 때문에 독서강의나 글쓰기 강의를 할 때 매주 참여하는 선생님들을 조금 더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오늘처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아직 얼마나 스스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행동을 하는 동기나 방식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하는 편이다. 그래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그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작업을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이런 방식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늘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을 낳는 원인이 되기에 고치고 싶은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젠가 김창옥 교수의 강의에서 멋진 해답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작할 때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끝날 때의 느낌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콜라나 인스턴트 음식이 먹기 전에 기분이 좋은가 먹고 나서 기분이 좋은가 물었다. 운동은 시작하기 전이 좋은지 끝나고 나서 좋은 지도 물었다. 정말 명쾌한 해설이었다.
“끝날 때의 느낌을 믿어라.”
결국 좋은 선택이란, 순간의 유혹을 넘어선 그 이후를 상상하는 것 아닐까?
짜장면을 먹으면 그 순간은 행복하겠지만, 결국 후회할 것을 안다. 헬스장으로 가면 처음엔 싫지만, 끝나고 나면 개운함이 온다. 그러니 선택해야 했다. 지금 당장의 기분이냐, 끝난 후의 만족감이냐.
오늘 내가 짜장면을 먹었다면 짜장면을 맛있게 먹을 때까지는 기분이 좋았겠지만, 이후로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 배가 부르니 운동도 가기 싫었을 것 같고. 대신 열심히 땀 흘려 운동하고 씻고 나오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 기분이 내가 찾고자 하는 운동의 '재미'가 아닐까)
해야 할 일은 나를 성장시키지만, 하고 싶은 일은 그 순간만을 채운다. 순간의 만족을 선택하면 내일의 후회를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나 명쾌함에도 이걸 일상의 더 많은 부분에 확대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나도 모르게 유튜브의 흥미로운 영상에 시선을 빼앗길 것이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에 마음을 뺏길 테니까. 그게 단순히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에서 작동하는 각종 호르몬들로 인해 벌어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은 기준을 만들어가다 보면, 시작할 때 기분 좋은 일보다 끝날 때 기분 좋은 일을 더 많이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글쓰기 습관을 들이고 싶지만, 맘처럼 쉽지 않은 수강생 분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습관을 들이는 게 이렇게 어렵다고. 하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수월해지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고.
무엇보다 아직 식단과 운동을 충분히 정착시키지 못한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끝날 때의 느낌을 믿어야 한다. 시작할 때 그 느낌을 미리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순간의 만족보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