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사마르칸트대 교수/동국대 명예교수 [사진=더코리아저널]


[윤명철 역사미학] 이 시대의 젊은 역사학도들에게 드리는 말씀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사마르칸트대 교수/동국대 명예교수-

며칠 전 오페라 ‘도산(島山) 안창호’를 관람했습니다. 무대 위에 재현된 도산 선생의 고뇌와 실천, 인간적 품격은 제게 깊은 울림을 안겨 줬습니다. 그 감동은 단지 한 인물의 삶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 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그리고 제가 평생을 붙잡아 온 역사라는 학문과 다시 조우하게 됐습니다.

같은 날 오후 저는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이 주관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최근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와 국방정책의 새로운 방향 모색’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발표자는 정치학자, 군사전략가, 국제관계 전문가들이었지만 저는 고대사 전공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낯설다고요? 아닙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현대사와 국제 질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관련 논문들과 「역사전쟁」, 「동아시아 해양영토분쟁과 역사갈등의 연구」 등의 저서를 펴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학은 미래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은 역사학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공부가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대를 껴안고 인류의 흐름 속에서 자기 몫의 통찰을 건네려는 실천적 지식인입니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지사들은 독립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역사를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신채호, 박은식, 김교헌, 장도빈 등은 전투 속에서도 유적을 확인하고 민중의 신앙과 삶을 관찰하며 인간과 민족, 나라와 역사의 본질을 사유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학자였고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 말하는 통섭과 융합학문의 원형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의 역사학계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에 주입된 학풍과 학문 체계를 비판 없이 답습하고 일정한 틀 속에서만 ‘객관성’을 말하며, 역사학만이 역사의식을 지녔다며 다른 분야를 내려다보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전략 없는 대전환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최대의 생태적 변환기, 최고의 생물학적 전환기(demi human), 기술문명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문명전환기(digital civilization), 세계 질서의 판갈이(greatgame) 속에서 민족 분열과 통일이라는 딜레마 앞에 서 있고, 동시에 사회적 붕괴가 전방위적으로 확장된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역사가 왜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이 곧 다가옵니다. 부여는 마지막에 고구려에 붕괴됐지만 그 고구려 또한 멸망했습니다. 조선은 허무하게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국제적 도움으로 간신히 나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국제적인 태풍 속에서도 반성은커녕 탐욕과 공리공론에 빠지고 한술 더 떠 분단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후안무치하게도 동족상잔이라는 민족자살을 택했습니다. 그래도 남한은 기사회생해 세계 현대사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은 총체적으로 붕괴 중입니다. 거기다가 세상은 야만과 가벼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겹친 시대에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처럼 험하게 몸을 쓰지도 않고 사업가처럼 목숨 걸고 돈을 벌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유’입니다. 생각하는 일,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 시대를 통찰하는 일, 그것이 바로 역사학자의 존재 이유이고 역사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여러분은 그 역사 속에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오래 응시하는 이들이 곧 진짜 역사학자가 될 것입니다. 젊은 역사학자들이 가치 있는 역사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쓰면 10년 후부터 한국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 오페라 ‘도산(島山) 안창호’를 관람했습니다. 무대 위에 재현된 도산 선생의 고뇌와 실천, 인간적 품격은 제게 깊은 울림을 안겨 줬습니다. 그 감동은 단지 한 인물의 삶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 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그리고 제가 평생을 붙잡아 온 역사라는 학문과 다시 조우하게 됐습니다.

같은 날 오후 저는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이 주관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최근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와 국방정책의 새로운 방향 모색’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발표자는 정치학자, 군사전략가, 국제관계 전문가들이었지만 저는 고대사 전공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낯설다고요? 아닙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현대사와 국제 질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관련 논문들과 「역사전쟁」, 「동아시아 해양영토분쟁과 역사갈등의 연구」 등의 저서를 펴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학은 미래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은 역사학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공부가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대를 껴안고 인류의 흐름 속에서 자기 몫의 통찰을 건네려는 실천적 지식인입니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지사들은 독립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역사를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신채호, 박은식, 김교헌, 장도빈 등은 전투 속에서도 유적을 확인하고 민중의 신앙과 삶을 관찰하며 인간과 민족, 나라와 역사의 본질을 사유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살아있는 역사학자였고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 말하는 통섭과 융합학문의 원형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의 역사학계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에 주입된 학풍과 학문 체계를 비판 없이 답습하고 일정한 틀 속에서만 ‘객관성’을 말하며, 역사학만이 역사의식을 지녔다며 다른 분야를 내려다보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전략 없는 대전환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최대의 생태적 변환기, 최고의 생물학적 전환기(demi human), 기술문명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문명전환기(digital civilization), 세계 질서의 판갈이(greatgame) 속에서 민족 분열과 통일이라는 딜레마 앞에 서 있고, 동시에 사회적 붕괴가 전방위적으로 확장된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역사가 왜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이 곧 다가옵니다. 부여는 마지막에 고구려에 붕괴됐지만 그 고구려 또한 멸망했습니다. 조선은 허무하게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국제적 도움으로 간신히 나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국제적인 태풍 속에서도 반성은커녕 탐욕과 공리공론에 빠지고 한술 더 떠 분단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후안무치하게도 동족상잔이라는 민족자살을 택했습니다. 그래도 남한은 기사회생해 세계 현대사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은 총체적으로 붕괴 중입니다. 거기다가 세상은 야만과 가벼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겹친 시대에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처럼 험하게 몸을 쓰지도 않고 사업가처럼 목숨 걸고 돈을 벌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유’입니다. 생각하는 일,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 시대를 통찰하는 일, 그것이 바로 역사학자의 존재 이유이고 역사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여러분은 그 역사 속에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오래 응시하는 이들이 곧 진짜 역사학자가 될 것입니다. 젊은 역사학자들이 가치 있는 역사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쓰면 10년 후부터 한국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글은 기호일보 지면 2025.07.17일자 19면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