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길주]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함의와 한류

-이길주(배재대 명예교수)

지난해 가을 우리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고 잠시 기뻐하다가 12월 3일 이후 모두가 거리를 내다보거나 나서느라 잔치는 자동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그 경사를 제대로 음미해 볼 때로 여겨집니다.

독서와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작가는 수상 직후 이미 이 시대 죽음의 행렬 앞에서 무슨 잔치냐고 국제적 공식 기자회견조차 거부하는 단호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고향마을 주민들의 동네 축하행사에조차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는 가지 못했습니다.

순간 숙연해지고 깊은 감동 속에 이 작가의 실체를 알아갔습니다. 죽음의 행렬은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예멘 등 중동의 전쟁터에서의 그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땅에서도 죽음이 전제된 계엄사태가 돌발했다가 스러졌습니다.

이후 계엄과 탄핵의 국가적 재난 속에 이 경사는 거의 잊혀지고 감동도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한국문학계와 민족사의 의미 깊은 경사로 경축하며 작가와 그 가족과 문학인들에게 감사하며 예의와 자부심을 갖춰 축하해야 했습니다.

이제 함께 경축하며 작가와 그 가족과 문학인들에게 감사하며, 이 가을 한류 열풍에 가세한 세계인들의 깨달음과 한국문학과 정신의 세계화를 가늠해 봅니다. 우리의 마음자리와 심상지리를 넓히고, 의식의 세계화와 형이상학적 한류도 생각해 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의 한강 작가의 모습을 또다시 상기합니다. 축하 잔치를 모두 거부하고 기쁨의 눈물보다는 동시대 세계의 전쟁과 죽음을 슬퍼하던 작가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의 기념관 건립과 고향 광주시에서의 문학관 건립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고향마을 잔치조차 단연코 거부하고 그 아버지까지를 단속했던 것인가 봅니다. 대작가이며 참지성인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무서운 폭력성, 무한정의 자연 파괴와 건설의 고질병을 경계하는. 폭력과 질병에 물든 역사 위에 아름다운 세상을 희구하는 작가 한강은 과연 진정한 세계적 양심, 진정한 지성인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고뇌와 함께, 부처와 예수, 마하트마 간디나 레프 톨스토이를 기억하게 하는 비폭력 무저항주의에 다가가는 진정한 글로벌 휴머니스트 작가의 면모를 보는 듯합니다. 아마도 작가의 뜻대로, 문화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구할 미학적 구원과 승리 장면으로 여겨야 합니다. 극한의 물질주의와 무신론의 야만적 문명을 극복한 각성된 세계를 선도할 중후한 한국문학과 철학적 한류의 시작으로 여기고자 합니다.

딸이 기자회견과 잔치를 거부하자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가 대신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전통의 사실주의와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같은 불교적 철학과 소설미학과 현대한국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인 한승원입니다.

그가 소탈하게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딸의 문학을 평가하며 ‘자식의 주변을’ 챙겼습니다. 그는 한강의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시적 문체와 정조를 칭찬하며, 아울러 맨부커상을 받게 한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Deborah Smith의 노력과 ‘영국 전통 가문’ 출신 번역가 그녀의 성실성을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차분한 어조로 아름다운 부성애를 보이며, 한국문학사 속의 작가 한강의 좌표가 황석영 등 자신이 속한 한국문학의 3세대와 달리, 노동, 민주화 주제와 같은 저항적 슬로건에 몰입된 리얼리즘을 넘어섰음을 지적하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승원은 한국문학 4세대 작가 일반과 한강을 평하여, 자칫 중역을 통한 유럽문학에 심취했던 3세대와 달리, 남미문학권까지 포괄적으로 이해하며 환상적 리얼리즘에 도달했음을 진술했습니다.

그는 한강 문학의 신화적 요소를 강조하며 그녀가 그렇게 문학을 아름답게 만들고,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성를 드러내는” 한강 문학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평도 전했습니다.

▶한강, 한국문학과 사회

한강의 작가적 자세는 남다릅니다. 건강을 조금 해치더라도 좋은 소설을 쓰려한다는 그녀의 표명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빛과 함께 자못 처연한 사명감을 읽게 됩니다. 노벨문학상은 한강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평가한 것이기도 합니다. <흰> 에 나타나는 작가의 색체 미학은 훨씬 처연한 철학적인 환상성을 드러내고 민족전통의 색채미학에 근접하기도 합니다.

필자는 한강 작품 속 순백 흰 눈의 이미지와 상징성을 파헤치며 만주벌판의 북방 문인 백석을 기억하며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아울러 “오랑캐 꽃”의 이용악 시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백석 시인은 “북방에서”와 “백화” 등에서 흰 백야 이미지와 함께 자작나무로 표상되는 북방대륙의 백색 이미지를 펼쳤습니다. 시인의 서사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무대와 아우라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육당이 논구하고 시사하던 밝음과 평화의 신앙 속 -백두산, 태백산, 소백산, 백의, 날개 달린 백마- 등의 한민족 조상의 백색취향과 믿음과도 결부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졸저, <한류와 유라시아 말춤> 2024. 07. 18 참조)

한강의 작가적 자세는 철저하고 치밀합니다. 미디어 속 작가 소개로 “10대 후반 20대에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문학에도 매료되었던 한강 작가는 줄곧 인간의 폭력성을 화두로 삼고 그 모순과 갈등의 뿌리를 파헤치고 ~~~ 광주518을 다루며 한강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그들’의 상처를 다시 열고 싶지 않아 주로 증언을 읽는 방식으로 취재를 했다고 말했다. ~~~ 쓰는 동안에는 독자도 생각하지 않는 철저한 ‘소설주의자’가 데뷔 30년, 한국 문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시사IN, 임지영 기자 2024. 10. 11)

소설주의자가 된 한강은 19세기 러시아 도스토옙스키 작품,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심취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한강은 어느 인터뷰에서 “감성이라든지 사람의 내면을 뚫고 들어가려는 의지같은 것을 보며 충격도 받고 영향도 받았다”고 도스토옙스키를 평하고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파고들어서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으면서 소설을 써낼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연합뉴스 2024-10-15). 한강의 문학세계와 인간관과 철학은, 평생 가난한 삶을 살며 총살 직전 풀려나 시베리아 10년의 장기유형 생활을 겪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세계와 인간관을 많이 닮았습니다.

<흰>에 표명된 2개월을 살고 간 언니에 대한 부채감과 죄의식 속 부활 의지로 작가 한강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고 자문하는 화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철학적 살인 후의 죄의식과 갱생의 의지를 닮아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의 선구적 환상적 리얼리즘에 해당하는 <콩알>의 카니발적 사후세계 묘사와도 연관되고, <지하생활인의 수기> 주인공의 자의식 과잉 심리 현상을 연상시키는 독백적 이야기 서술 장면이 한강의 주요 소설 속에 전개됩니다.

가난하고 학대받은 사람들의 슬픔과 비장미 속에 <채식주의자>는 바흐친이 말한 카니발적 현실의 그로테스크한 인간성, 내면의 비극성과 그 속의 폭력성과 비극적 모순을 파헤치지만, 육식을 금하는 불교적 색채의 문화와 현대 환경위기, 즉 기후위기에 대한 작가의 인식 표명으로 – 지나친 과소비와 육식문화에 대한 - 세계적 반성담론도 스며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전복되기도 하는 환상적 리얼리즘 속에 한강의 <흰>, <희랍어 시간> 등 고고한 운율이 깔린 작품들은 간결 유려하고 함축적 시적 문체로 기존의 모든 리얼리즘 서사를 압도하고 있는 듯합니다.

김춘수 시인은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내놓으며 자신은 도스토옙스키를 읽을 때마다 ”들리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흔히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작가로 <지하생활인의 수기>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에서 처절하다시피 치열하게 인간의 모순과 갈등의 본질을 파헤쳤습니다. 나아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의 ‘초인’사상에 연루된 인간과 신의 문제까지 파헤치는 장면으로 독자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도스토옙스키를 읽은 후, 김춘수 시집까지 읽으면 이 세계와 인간 내면세계 심연의 진리를 터득한 듯 뿌듯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도스토옙스키의 난삽한 문체에 질려온 필자는 한강의 소설, 특히 <채식주의자>와 <흰>과 <희랍어 시간>을 읽고 그 유려한 시적 문체와 함축적 서사와 상징과 환상성, 내면의식의 전개에 매혹되었습니다. 더욱이 필자는 한강에게서 한국 무속과 불교적 명상과 해탈적 사유 분위기를 느끼고 아버지 한승원의 영향을 추론하기도 하며, 주변 가족과 지인들에게 일독을 권해왔습니다. 필자는 아뭏튼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명언을 되새기며 작가 한강의 철학과 미학을 나름대로 살펴왔습니다.

한강의 철학적 사유의 본질은, 비극적 모순과 갈등의 역사 인식 속 처절한 슬픔과 잔혹성의 서사 미학은, 아름다운 유토피아에 대한 적극적 또는 반어적 희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제주4-3을 눈물로 탐색한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신들린 듯 죽음과 죽은자에 몰입하는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설명하는 지점에, ”폭력에서 존엄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은 험하지만 인류가 가야 할 길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순간 ----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이라고 부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마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화자의 인식에 깔린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의 길처럼 극한의 위험이 도사린 여정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출구를 향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준 스웨덴 한림원과 서구, 유라시아 서구인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놀랍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저력을 비하해 온 우리 자신을 돌아볼 계기도 생겼습니다. 서구 지성계는 중국과 일본 위주 아시아의 철학과 가치관과 미학을 연구해 왔습니다. 샤머니즘과 불교와 유불선 사유체계와 도자와 음식문화까지 충분히 연구하고 즐겨왔으나, 은자의 나라 한국을 알게된 것은 오래지 않습니다.

그들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한국을 소소한 변방의 민족국가로 인식했으나, 지금은 세계 어디서나 한국인에 대한 눈길 또는 환호와 말춤의 음악과 함께 한국음식까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케데헌(K-pop Demon Hunters) 등 영화와 음악의 세계적 유행과 함께 국내 여기저기 수많은 세계인 관광객과 함께, 서구 학계의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관심과 태도의 변화와 국내외 어디서나 이른바 한류의 덕이라 여겨지는, 한복의 유행같은 가시적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보게 됩니다. 한강의 문학과 실천은 세계 속 한국 문화예술과 소설문학의 과제를 결부해서 국격과 인류애를 높이는 아름다운 한류미학적 실천과 성과의 정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만 유럽과 서방세계는 한국 영화와 소설을 평가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유라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예술 즉 동서유럽과 러시아 – 우크라이나나 이슬람권 역사나 현대문화, 소설과 시를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지피지기라 했는데 우린 세계를 읽고 알아갈 진지함은 내려놓고, 젊은 한류에 기대 게으른 말춤과 어설픈 노래로만 세계화 몸짓만 보였던 것입니다. 이미 지방 대학엔 인문학 전반과 외국학 전공을 폐지하는 추세가 팽배한 속에 탄식만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에 노벨문학상이 우리 소설가에게 주어졌습나다. 한글과 한국어, 언어에 깊이 천착한 한강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함께 철저한 실천적 인간애가 평가받은 것입니다. 처절한 한국사와 함께 치열했던 근현대 인문학, 예술인들의 여러 실천과 실험, 세계화 노력도 배경이 되었고 한몫했으리라 봅니다. 무엇과 누구보다 작가 한강의 천재성과 노력의 결과이고 노벨상위원회의 혁신적 수상 방침의 덕분이라 봅니다.

▶한류와 예술미학 비전

한강은 자신의 가족과 영국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등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서로서로가 아름답고 훌륭한 문학창조의 동반자로 보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겠다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들 간의 이해와 연대를 통한 번역과 공감의 중요성을 상정하게 합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슬픔을 공유하는 문화적 연대이며, 기계와 차이가 나는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하는, 세계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애 속 연대와 협업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감히 그것은 한류문화의 모든 콘텐츠와 이벤트에도 적용될 화두로 봅니다.

한류의 뿌리와 토양을 만들어준 이 땅, 유라시아의 여러 문화소가 농축되어온 맹장-충수돌기같은 한반도 상공에 쓰레기 풍선과 거친 전쟁위협 목소리가 공중에 난무하여 터지기 직전 시점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핵전쟁의 위협마저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죽임과 죽음이 널리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평화를 기원하며 촉구하는 한강 작가와 함께 한국 문인- 예술인들의 발언과 함께 역할도 기대해 봅니다.

이 시대 우리의 화두는 지구 기후위기 대처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여야 합니다. 지구촌 환경과 평화의 연대와 감시 체제 탐구와 더불어 우리의 풀뿌리 문화에 대한 천착이 필요합니다. <파묘>와 <바리데기> 등 한류를 선도한 영화계와 함께, 오든 장르 예술을 지원해야 할 국가와 주요 미디어도 세계적 소설가 한강과 그의 후배들이 영혼을 지닌 세계의 지성, 양심으로 우뚝 서도록 응원하고 지원하며,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슬픔을 갈무리하며 아름다운 인간과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작가 한강이 세계문학과 지성을 이끄는 선두에 서 있습니다. 이미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행동과 서사의 선도자 격의 소설가 황석영이 기억됩니다.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무속적 서사로 <바리데기>(2007 창비)를 저술한 황석영 작가는 이미 김일성 대면 등 역사의 현장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한때 알타이문화연대까지 창설을 시도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세계 미디어에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주혜는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야스나야 폴랴나 상) 해외문학상을 그 번역자 키릴 바티긴과 함께 받았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은 또한 한반도의 질곡의 역사를 일제 치하 한반도 민초들의 투쟁과 파란만장한 인생을 ‘풀어낸’ 장편소설로 일려졌고. 작가는 호랑이를 한국독립의 상징으로,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긍지를 높이려 했음을 밝혔다 합니다.(연합뉴스/2024-10-11)

한강의 표명대로 축제적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한류미학과 비전에 천착하여 한국예술미학의 전망을 생각하며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 봅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등지의 이 악마적인 극단 폭력과 죽음의 그늘 아래, 인류는 폭력적 전쟁과 자연재해로 혹독한 재앙이 연속되는 기후위기와 함께, 지구촌은 절대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극한적 개발 착취 문명 발전에 대안모색이 갈급하다 할 것이며 한류와 한국문학의 길에 숙제로 던져진다할 것입니다.

그 해답은 과도한 생산과 도시화로 탄소배출량을 극대화하고, 대자연과 이웃 민족과 땅에 대한 약탈을 일삼던 제국주의 시대의 해적문화가 아닌, 대지에 뿌리박고 공동체 문화를 간직하던 안정된 신앙과 사고체계가 아닐까 합니다. 그간 한류 현상과 아울러 아시아-동양의 정신문화와 인문의 정신이 이미 서구 지성들의 깊은 관심꺼리였다면, 그 뿌리를 간직한 한반도에서 새천년 인류를 이끌 새 이데올로기와 담론을 형성해야할 책무를 인식해야 합니다.

솟대, 즉 ‘토템폴’의 원형인 우주목을 세우는 원형적 샤머니즘과 소도문화 속 자연과 생명존숭과 같은, 천지인天地人의 수직적 위계를 인정하고 자연과의 공생의 담론이 살아 있는 세계관이 회복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우선 주목되는 지구 북반구에 대평원이 연장된 유라시아 한 덩어리 땅의 끝자락 제주 남단에서 핀란드까지 아마 문학적, 철학적 문화한류를 통해 유라시아 평화를 선도하며 통일한반도의 미래비전을 다시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한류 미학의 본질과 좌표도 다시 설정될 시점입니다. 세계적 명사, 지성이 된 한강의 후속 작가와 여타 예술인의 육성 기반 마련을 염원합니다.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곳곳에 전운이 감돌고 죽음과 폭력이 일상화되는 이 시대에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를 평가한 노벨위원회의 판단과 결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강 작가에게 거듭 축하드립니다. 무엇보다 시대와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어두움을 방관하지 않고 광주와 제주의 비극을 주제로 역사와 인간의 폭력성과 고통에 맞선 이야기에, 작가의 실존적 고뇌와, 역사와 “작별하지 않는” 작가적 의무감과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인류애에 바탕한 지성적 발언과 면모와 실천에서 중후한 한류미학의 시작을 기대합니다. 한강 작가가 근접한 정신한류를 위해 한국 문학계는 종교계와 함께 폭력적 무신론을 경계하며, 두려운 자연과 인류에 대한 겸손과 경의를 여기서 되살리길 기대합니다. 한국의 정치경제 체제와 사회문화, 종교계에 깃든 모든 폭력적 무신론을 경계하며! 지구촌 여기저기, 나라 곳곳에서 예술 미학의 중요성과 그 가치가 다시 인식되어야 합니다.

2025/ 8/ 러시아문학박사, 평론가 이길주

이길주 러시아문학박사, 평론가, 배재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