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주 배재대 명예교수 [사진=더코리아저널]


[특별기고 이길주] 오래된 한류의 뿌리와 토양/ 시공간적 원천과 미래비전

이 길 주(배재대 명예교수)

한국 문화의 뿌리와 토양

2000년대 초 집단적 신명의 군무와 같은 붉은악마 신드롬은 케이팝과 한류 영화와 드라마 유행을 즉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 집단 정서의 발현이 거리와 광장에서 시작되고 개별 창조력을 추동한 시점이 된다. 그 진지한 신명의 한류를 선도한 한국적 정신과 정서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한(恨)을, 슬픔과 정한을 흔히 한국인의 깊은 심성, 또는 문화 유전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례식을 포함한 모든 잔치와 의례에는 내재된 정과 한, 해학과 풍자의 정신과 습속이 깔려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명과 흥을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정서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이 지난 세기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시작된 이른바 붉은 악마와 한류음악과 스포츠로, 역동성과 열정과 팬덤으로 더 크게 떨쳐 나타났다. 말하자면 자본과 기득권의 양반문화가 아닌 민중문화에서 그 본체가 한껏 도드라졌던 것이다. 시인 신경림의 대표작인 <농무(農舞)>에 그러한 민중의 심성과 그 뿌리가 뚜렷이 그려지고 있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중략)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신경림, 1973년 <농무>에서)

이 시에서 원래 “우리”들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현실이 원통하지만, 풍물패가 되어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점점 신명이 난다. 신명이 난 우리는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며,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며 춤을 출 것이다. 시인은 자전적 에세이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가난하고 못난 놈들이라도, 한과 울분, 허무의 무대 위에 곧바로 흥과 신명을 펼치는 한반도 민중의, 민초 집단의 본성을 공언한 것이다. 풍류의 뿌리와 토양을 보여주며 긍정의 유전자를 노래한 시점이며, 한편으로는 시인의 당위적 다짐이었다.

그러한 한민족의 신명의 문화 유전자가 K팝에도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윤태일 교수의 해석이다. “중독성이 강하고 반복되는 리듬은 쉽게 흥겹게 하고 신명 나게 한다. 웃음과 울음의 양가적 감정의 중복은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한데 뒤엉키고 섞이는 데 있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노래하고 이별 속에서 만남을 바라보며 약동하는 건강한 밝음, 흰 그늘의 미학이 있다. 신명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일 때 훨씬 강렬하게 지펴 오른다. K팝의 특징은 집단적이라는 데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 유전자와 한류 (<<신명커뮤니케이션>>, 2014. 4. 15., 윤태일)

지정, 지문화학 속 한반도는 섬이었다.

한반도는 섬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 충수돌기처럼 튀어나온 형상으로, 한국 땅은 그간의 분단과 삼면이 바다로 섬 같은 조건에서 해양과 대륙진출을 도모하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다리와 교두보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 19세기 말, 20세기 초 약육강식의 시대에 식민주의자들의 먹이감이었고, 그리고 패배의 무대였다. 그러나 서세동점의 역사 속에 선각자와 독립운동가들에 의한 도전과 응전 속 희망의 공간이었다.

지속적인 한류를 위해 한반도의 고대적 상상력과 역사 사실과 함께, 지구촌 인류 문화적 보편성과 이어진 그 앞날을 살펴보고 성찰해 보아야 한다.

역사 공간 한반도의 운명과 한민족의 활동 영역의 논의와 규정은 흔히 지정학적 왜곡과 편견이 함께 작용해 이루어졌다. 지난 세기 위축된 지리적, 문화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윤명철 교수는 말한다. “우리 역사는 아직까지 반도 사관과 동아시아 사관에 갇혀 있습니다. 한민족의 활약 무대를 한반도, 동아시아에만 국한시키고 있죠. 우리 민족의 실제 활약 무대는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이었습니다.”(한국경제 20210119).

고고학자 최몽룡 교수에 의하면 한반도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맹장, 충수돌기였다. 특히 북유라시아 한랭 고원 건조지대와 한반도는 자연생태상으로나 역사적으로 밀접한 상호관계를 맺어온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심상지리 속에는 단절된 공간이었다. 오랜 기간 북아시아 여러 종족이 북유럽에서 북태평양 연안까지, 곰과 호랑이, 또는 나무를 숭배하며 조상으로까지 섬기는 문화가 공유되어 연결되었다. 백두산 호랑이가 시베리아 호랑이와 생태유전학적으로 접맥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시대 한반도는 시각과 관점을 돌려놓고 보면 문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땅이다. 사계절 대륙풍과 해양 생태환경과 인종과 문화가 섞인 유라시아 문명의 마지막 기착지로 농축 발효된 음식문화로 표상된 새 맛과 향을 창출한 곳이다. 온갖 장류와 김치 깍두기 등 대륙과 해양 산물의 융합과 발효에 의한 보존 식품이 주도된 식문화가 그것이고, 그러한 혼융발효로 구현된 신선한 복합 축제적 - 카니발적 장면과 리듬의 대중적 장르예술 케이팝과, 한류영화 중 최근 선풍적인 세계영화인 <케데헌K-pop Demon Hunters>에도 구현되고 있다.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은 한반도를 넘어 문화강역적 측면의 해양과 대륙의 유라시아 고대사 공간 속에서 펼쳐져 왔다. 중국 고서들에 나타난 “동이東夷”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평가 즉 ‘잘 노는 민족’으로, 그 현상은 폄하가 아니라 부러움의 표현으로 보아야 된다. 고조선, 예맥, 고구려, 발해 등 고대사 북방대륙 선조들은 과연 하늘로 비상하는 천마의 기상을 간직하고 홍익인간을 모토로 풍류문화를 즐기고 신선도를 지녀 영적 능력을 기르고, 그러한 유전자를 남긴 것이다.

축제적 한류의 원천

춤추고 노래하고 뛰고 노는 능력이 한류의 기본일 수가 있다. 한류의 뿌리는 그러한 역동성을 간직해온 민중예술에 잠겨있었다. 탈춤이나 판소리, 풍물 등 전통문화 속에 흘러내린 신명의 문화 유전자는 민중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지속적인 한류를 위해 한반도의 고대적 상상력과 인류 문화적 보편성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는 것, 천착하는 것이다.

이른바 예인藝人 기질이 탁월한 민족이다. 서태지, 싸이에서 비티에스와 블랙핑크까지 케이팝 가수와 무용가들과, 손흥민, 김연아와 박태환, 박세리, 김연경 등 스포츠 스타가 현대 한국의 영웅이다. 텔레비전을 보면 이즈음 한국에는 모여서 함께 노는 예능 프로가 대세이다. 각 지자체와 단체 행사는 서구적 축제 양식에서 한국전통의 풍자적 연희와 국악과 트롯이 대세로 전변하는 양상도 감지된다. 한류의 기본이 예인藝人 기질이라면 그 역사는 깊고 넓다. 해양문화가 접속된 대륙적 기질이 근간이며 수렵유목 생태사와 농경사회화 과정과 엮여있다.

그 옛날 한국인의 습속을 그려 놓은 여러 기록 속에서도 나타난다. 이미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고구려 편에 “ 그 나라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나라 안 모든 촌락에서는 밤만 되면 남녀가 여럿이 모여서 서로 노래하고 논다. --- 사람들은 성질이 깨끗하고 맑다. 자기 집에 술을 빚어두고 먹기를 좋아 한다. --- 걸음걸이 역시 모두 달음질치는 것과 같다. --- 시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데 이 때가 되면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이것을 동맹東盟이라고 한다. 공사公事로 모일 때 입는 옷은 모두 비단에 금은으로 장식을 한다.” 며 ////이미『삼국지三國志』동이전 부여夫餘 편에도 나라에는 국왕이 있고 6가축으로 관부官府를 이름지었으며…… 은殷 나라 정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영고迎鼓’에는 나라에서 큰 잔치를 벌이고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었다(「連日飮食歌舞」)는 기록이 있다. 부여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나왔고, 가야와 신라도 창업세력이 북방계로 비정되고 있다. 고구려 동맹東盟과 예濊의 무천舞天이 바로 영고迎鼓와 같은 그런 천신제-추수감사제 성격의 축제로, 시월에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주야음주가무晝夜飮酒歌舞)라는 구절도 흔히 인용되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밝음-부르칸 사상 속에서 북방 샤머니즘 문화권에 선(仙)적 요소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선(仙) 수련의 기본 프로세스는 수화 (水火)의 구조를 이루고 있고 仙 사유의 기본 틀은 하늘 신인 화火와 땅의 신인 수水의 구조로 갈등과 화해의 양상을 반복한다고 보았다. 그러한 갈등과 화해의 양상을 놀이화한 적극적 축제가 영고, 동맹, 무천으로 국가적인 큰 굿판 - 페스티발, 또는 카니발이었다. 천신사상과 선적仙的 사유가 합해지고 기마유목 문화의 유입으로 역동적 굿판이 펼쳐지는 천신제 또는 추수감사제가 완성되었다.

육당은 단군신화와 몽골 게쎄르Geser 신화와의 유사성을 밝혔다. 한국 고대 건국신화 대부분, 신앙과 연희, 민화와 천마도, 십장생도 등의 그림도 북방대륙문화소와 포괄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시베리아 에벵키족 곰 신화는 단군신화를 떠올리게 하고 바터얼쌍 신화는 공주의 곰나루 설화와 유사한 내용이다. 무엇보다 몽골과 시베리아 샤먼의 몸짓과 리듬과 의상 디자인은 한국 무당의 굿 음악과 춤사위와 복장과 흡사하다. 단군신화와 연결된 몽골 게쎄르문화권과 동이東夷문화권, 또는 샤머니즘문화권도 몽골리안루트Mongolian route를 통한 문화교류와 융합으로 형성된 것으로 본다.

원시 수렵유목 문화에 기반한 북방 샤머니즘과 토템이즘은 한반도에 정착하여 그 천신숭앙 코드가 신라 금관의 장식 사슴뿔로 우주목의 가지 모양 장식으로 고급화되어 남아있다. 이러한 금관 장식 사슴뿔, 또는 우주목의 가지 모양 디자인 조형물은 고고인류학 범주에서 스키타이 황금문화에 연결된다. 그것이 소도(蘇塗)와 민가 굿당의 입구나 마을 입구에 나무나 돌로 입상화되어 세워지고, 농촌과 산촌에서는 장승과 오리를 앉힌 솟대로 전승되었다. 천신사상과 선적 사유는 토테미즘, 애니미즘과 함께 인류문화 발상지에서 기원해, 인류 이동로와 교섭 루트를 통해 전파되며 자연환경에 적응해 온 것이다.

놀이 한류, 신명과 인간애

한국 장고와 북과 징의 어울린 풍물 소리와 리듬은 대륙 초원을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와 마상의 기수의 역동적 몸짓의 리듬을 닮아있다. 한반도 곳곳에 마구간의 흔적, 말무덤 이야기로 전승되는 기마민족 담론은 몽골과 시베리아, 흉노와 스키타이 문명 그리고 현전하는 고구려, 신라인의 노래와 춤에 결부시켜 해석되기도 한다. 몽골음악 호메이의 창법과 가락 장단이 재연되고 아리랑에 대한 초원 기마인들의 깊은 공감 또한 회자되고 있다. 대륙 초원을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와 마상의 기수의 역동적 몸짓과 리듬과, 샤먼의 춤과 리듬과 이 모두가 케이팝의 원천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몽골 역사에 정통한 주채혁 교수는 “음주문화, 젖과 육고기나 생선 및 곡식으로 만들어 먹는 온갖 음식문화, 노래를 부르니까 그 가사에 역사나 철학 및 문학과 만담도 들어가고 춤을 추니까 택견이나 곡예도 내포된 종합예술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몽골 원곡元曲이나 탈춤에서 공연자와 관중이 더불어 어울리는 북아시아의 놀이문화의 공유 양태를 언급한다. 주 교수는 더불어 음주가무문화 양상을 갈파한다. “술을 서로 권하고 술잔을 돌려가며 마시는 특유의 음주법이 술판을 주도했을 터이다.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마시고 먹고 노래하며 춤추는 이런 특유의 굿판은 물론 유라시아 북방 유목민 나름의 생태사가 빚어낸 열매로서의 축제문화다.”라고 축제적 한류의 뿌리를 정의한다.

풍류 사상은 단군신화로 소급해 보면 인간의 본성인 공동체정신을 본질로 삼아, 홍익인간의 천부인天符印은 인간본성의 보편성을 상징하고 자아의 주체성과 인간존중의 원리에 입각했다. 21세기까지 이어지지만 철학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이러한 무속적 사유는 오히려 기층 한국인 피 속에 살아있고 현대 물질문명의 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모든 기성종교와 함께 무속적 사유에서 존재 체계 이해의 핵심인 영(靈)의 존재 양상이 부활되어야 한다. 그 바탕에는 무한한 인간애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라향가 가객은 화랑이고, 그들의 풍류도는 오늘의 신명나는 한류와 통한다. “춤과 노래를 통한 현세에서의 공동체의 삶의 가치를 긍정하는 태도”가 풍류도의 기본 이념이었다, 더구나 삶과 죽음을 연결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더욱 드높이는 씻김굿 등 샤먼의 연희는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트라우마까지 수용하고 갈무리하는 문화였다.

한국문화소 속에는 씨름과 줄다리기 등으로 보여주는 집단적 신명과 놀이적 요소가 때론 엄숙한 제의와 조화되어 긴장과 이완 속에 흥취를 돋군다. 더구나 원래 수련 요소가 강한 풍류(소리, 놀이, 한풀이)는 기예와 함께 타악기가 주도하는 풍물적 측면으로 분화하기도 했다. 나아가 신선수련은 호흡과 동작과 함께 놀이로 유희화 되기도 하고 심신수련의 수단으로 전이되고 있다. 그러나 정한과 인간애를 담은 기층문화 속에서 해학적 연희로 발전되기도 한 무당의 굿과 마당놀이는 신명의 한마당이고 놀이를 소재로 만들어지는 케이팝 한류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궁극에는 인간의 본원적 불사추구와 유토피아 희구에 닿는 과정의 몸짓으로 보아야 하며 축제적 한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유럽으로, 아시아로, 알라스카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한 유랑의 역사, 그것은 먹거리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유토피아를 향한, 현재와 이곳을 벗어나 미래와 저곳을 향하는 기질과 용기에 기반한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성을 숭배하고 이상향을 그리면서 현재와 이곳을 낙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리하여 현대에 와서 인간은 ‘만드는 인간(Homo Faber, Man of the Maker)’으로, ‘노는 인간’ 또는 ‘놀이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과 “같은 차원에 속하는 술어로서 취급해야 할 것이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 Man the Player)’이라고 생각된다.”고 역설하였다.

한국인은 전형적인 ‘노는 인간’ 또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다. 조흥윤 교수는 한국 민중문화의 두 가지 특성으로 놀이와 신들림을 들면서 한국 민중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훨씬 다양하고도 독특한 놀이 문화를 가꾸어 왔다고 보았다. “한국 민중의 놀이는 이렇듯 일과 대비되거나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일과 여가와 신앙 속에서 그것들과 함께 얽히고 어우러져 즐겨지던 삶의 표현이다. 한국 민중은 놀이를 그렇게 삶의 율동으로서 익히고 생리로 가다듬어 왔다. 그것을 일러 민중의 호흡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어 조흥윤 교수는 민중의 놀이는 일 속의 놀이, 여가 속의 놀이, 신앙 속의 놀이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어왔다고 말했다.

천마도, 유라시아 말춤과 오래된 한류 콘텐츠

가수 싸이가 말춤을 추며 노래를 한 것을 전세계 젊은이들이 따라 하고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기마 자세로 말을 타고 달리는 듯 뛰는 말춤을 추어 세계 청소년들을 열광케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가 유명하다. 한국의 페가수스, 백마, 천마이다.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에 의하면 신라를 세운 신라 지배층은 북방계로, 알타이, 바이칼을 거쳐 경주와 일본열도까지 이른 북방기마민 후예로 비정하고 있다. 하늘과 태양과 소통하는 최고권력자를 또는 불세출의 영웅과 지도자를 기다리는, 후대 영웅의 출현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담긴 그림이리라. 이미 건국신화에서 백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을 두고 간 것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백마라고 되어있는 것이다.

천마총의 천마도 [사진=이길주]


한국의 페가수스라 불리우는 천마총의 천마도는 말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를 최고의 경지로 신앙적 경지까지 올린 그림이다. 날개가 달린 백말은 하늘로 향한 지배층의 권위와 함께 민중의 구원을 염원하는 표상이 된 것이다. 이 천마도는 무덤의 벽화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적석목곽분인 무덤 내에 있던 부장품인 말다래(障泥, 말을 탄 사람의 옷에 진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옆 양편에 늘어뜨려 놓은 가죽제 마구)에 그려진 것이다.

우리는 소를 매는 장소를 외양간 또는 마구간이라고 불러왔다. 말이 없는데 말의 거소로 말했던 것이다. 이 땅에선 말 문화가 더 오랫동안 보편적이었으나 농경생활이 고착되며 그 자리에 소나 당나귀가 들어선 것이리라. 더구나 기마 자세로 말을 타고 달리는 듯 뛰는 말춤은 우리 어린시절의 말타기 놀이와 함께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가 보여주는 대륙적 역동성 전통 몸짓을 이어받은 것으로 본다.

올림픽출전 태극용사들과 함께 지금의 한류스타들의 세계 속의 영웅적 활동과 인기는 한민족 유전인자의 긍정적 실체에 대한 확신과 함께, 고대 영웅신화의 오래된 상징코드를 환기하게 한다. 사학자 주채혁은 몽골사 전공을 하고 한민족 기원과 형성에 천착하여 한국 고대사 공간을 몽골과 시베리아로 확장하였다. 시적 상상력을 주저치않는 주 교수는 그의 책 <차탕조선, 유목몽골 뿌리를 캐다>에서 아리랑을 “님을 떠나보내는 이별가, 이별의 고개, 몽골 겨레와 고려 겨레의 이별 장면”으로 해석하고 있다. 주채혁 교수는 그의 “유목몽골 순례11”에서 케이팝에 대한 광대한 생태-역사주의 분석을 하며 유목 몽골로이드와의 연대를 주창한다. 그는 맑은 물 ”아리수“를 거론하며 아리랑의 아리를 중국인들의 아리랑 표기 我里郞을 예시해 대흥안령 근처 강 아리하阿里河에서 온 것으로, 바이칼 서쪽 사얀산맥에 주목해 조선의 선鮮자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주채혁 교수는 파른 손보기 교수가 시사한 북방 ”기마양유목사“와 북방몽골로이드에 천착하여 민족이동과 형성의 루트를 파악하고 있다.

아리랑과 님 웨일스Nym Wales의 ‘아리랑’

최근 노벨문학상의 한강문학과 함께, 메기 강의 <케데헌>, 박찬욱 <어쩔수가없다> 등 영화한류와 K-pop이 대세이다. 그 배경과 주인공들이 누구보다 먼저 서구문화 속에 인정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많지만, 과거사 속에 흥미로운 실례가 있다.

지난 20세기 초중반 서양인의 시선에 의해 보여진 한국인과 한국정서를 다룬 흔치 않은 책이 님 웨일스Nym Wales의 <아리랑Song of Ariran>(1941)이다. 님 웨일스는 <아리랑> 속에 김산의 구술을 바탕으로 김산과 그의 동지 한국독립운동가들의 투지와 기개와 열정, 인간애와 사랑과 절망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서세동점과 제국주의의 물결 속에 소멸된 나라의 민족 비극과 운명에 결부시켜 양심적 서구 여류지성이 주목한 조선독립운동가 장지락 즉 김산을 다룬 전기적 역사서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은 극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이다. 산은 우뚝 솟아 있고, 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어디를 보나 비온 후의 신선함과 푸르름이 느껴지는 나라이다.”

“반짝이는 조약돌이 깔려있는 냇가에서는 부인네와 처녀들이 무명옷을 눈처럼 희게 빨고 있다. 이상주의자와 순교자들의 나라가 아니라면 그 여인네들이 이처럼 눈부시도록 깨끗한 청결을 위해 그토록 힘든 노동을 감내하지는 않으리라.” “머리는 성모 마리아처럼 깔끔하게 수건으로 감싼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국인이 극동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단정했다.”

님 웨일스는 흰 무명옷을 “눈처럼 희게” 빨고 있는 “성모 마리아처럼 깔끔하게“ 수건을 쓴 한국 여인들에게 감탄하고 있다. 작가는 한·중·일 세 나라의 전체적 인상에 더불어 국토와 마을에 대한 비교와 함께, 조선의 목가적인 정경에 찬탄을 보내고 있다. 님 웨일스는 기독교계 지식인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비견한 한국 여인의 모습과 품격에 대한 칭송으로 한국인들에 대한 최상의 헌사를 서술한 것이다.

님 웨일스의 증언으로 오늘의 영화 한류의 단서가 규명되고 근원이 밝혀지는 듯하다. 당대 ”한국인 영화배우는 일본과 중국에서 모두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이어 ”이렇게 아름답고, 총명하며, 우수해 보이는 민족이 외형상 두드러짐이 없는 조그만 일본인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 생물학적으로도 걸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안짱다리의 작달막한 일본인 관리가 칼을 차고 거드럭거리며 여러명의 한국인들에게 거만하게 명령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음을 토로한다. 객관적 입장과 생물학적 이유에서 한민족의 총체적 밈의 우수성을 논하는 듯, 님 웨일스의 한국 땅, 한국인 예찬은 흥미롭다.

한류스타 탄생이 주로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세기 전 미국인 여류지성 님 웨일스의 예리한 시선을 다시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키가 크고, 강인하고 힘이 세며 균형이 잘 잡혀 있어 뛰어난 운동선수들을 많이 배출시키고 있”음을 손기정 선수를 들고 필립 안과 김찬[검은 매미] 등 당대 미국과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인 영화배우를 예시하며 “잘 생기고 이목구비가 뚜렸한 사람이 많다”고 역설하였다. 지금의 한류 현상과 스타들의 등장 가능성을 예고한 혜안으로 여겨진다.

영속적 한류의 시공간과 전망

한류의 근원과 비전, 과제를 논하자면 먼 과거와 미래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도전과 응전, 농축과 발효를 통한 문화융합의 역사이고 그러한 미래이다. 이미 2022년 1월 경주국립박물관에서는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특별전이 열려 여기서 보여준 것은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는 다양한 유라시아 문명의 이동과 전파, 그리고 접변과 융합 농축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륙에서 도래한 청동기, 철기문화와 곡옥과 유리 등 해양을 건너온 유물과 함께 샤머니즘 풍속과 제의에서 보여지는 것은 그것이 이 땅에서 다시 재창조되었던 사실이다.

먹거리에서 주목한다면 김치와 젓갈 등 발효문화 속에 답을 찾게 된다. 대륙과 해양의 산물을 함께 버무려 오래 저장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류는, 대륙적 역동성 전통을 이어받아 대륙문화소와 해양문화소를 농축발효시킨 문화를 뿌리로 지닌다. 토박한 지표면 위에 사계절 순환 조건을 극복하고, 대륙과 해양 생태 환경이 융복합되어 다원적 식생대와 문화가 형성되었다. 유라시아문화의 최종 기착지로 농축, 발효된 음식문화로 표상된 새 맛과 향이 창출된 곳이 다시 한류 음악과 음식 등 새로운 문화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한국 땅은 지구의를 거꾸로 돌려놓고 보자면, 동에서 서로 문명의 출발점이 되는 땅이다.

지속적인 한류를 위해 한반도의 고대적 상상력과 인류문화적 보편성에 천착한다. 철학자 탁석산은 한국적인 것에 내재된 세계적인 보편적 속성이 한류의 본질일 것으로 보았다. 고유 브랜드라는 것이 특수성과 정체성을 강조하지만 결말은 보편적인 감성과 메시지로 관객을 감동하게 해야 한다. 한국영화에 담긴 스토리와 영상미가 세계인의 보편적 감성을 움직이고 있다.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는 ‘세계 속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 세계를’ 말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 영화는 처절한 현대 한국 현실의 비극성을 희화화하며 폭로하여 눈물 속 쓴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우리 시대의 비극을 반영한 처절한 리얼리즘과 동시에 한국적 환상성과 환타지를 믹싱하여 현대 인간과 자본주의 보편의 모순과 갈등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의 영화 <케데헌> 이전 이미 가장 오래된 보편적 한국적 정서와 정체성이 반영된 영화들인 샤머니즘 소재 영화가 있었고 유럽에서 인정받았다. 이두용 감독 <피막>, 강수연 주연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배용균 감독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이 베니스, 모스크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본원적 한국의 정체성이 이미 평가받아왔던 것이며, 그것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유라시아적 문화소통과 연대의 근거이고 미래 전망이다.

탈경계 한류의 미학과 비전

현대 세계체제의 근본적 경향은 비인격화의 경향, 즉 개인의 환경과 인격, 개성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고 모두에게 시장논리를 확장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화예술과 종교 전반이 세속화 대중화에 매몰되었다. 20세기에 격화된 극한 대립의 동서 이데올로기와 함께 자본과 문명의 폭력성이 21세기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병(病)이 되었다. 니체의 말대로 우리가 신을 죽이고 철저히 무신론의 시대를 열어온 결과이다. 한류의 방향은 전통 정체성과 함께 현재성, 대중성을 담지한 인류 보편의 감성과 희망을 대변해야 한다. 처참한 전쟁과 코로나 펜데믹 등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지구촌 민중 미학을 선도할 과제를 안고 갈 수도 있다. 한류는 한민족의 독점물이 아니라 세계인의 공동자산으로, 케이-스피릿K-Spirit의 전도사로, 영속되기를 바란다.

한국어와 한글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춘향전과 바리데기 신화, 김홍도 그림의 해학과 풍자 정신과 함께, 까치밥을 남겨 겨울새를 살리고 솟대를 세우고 하늘을 향해 빌어대는 치성의 정서와 혼이 살아나야 한다.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전은 독일음악에 한국적인 것을 보탠 것으로 유라시아적 융합에 의한 재창조이자 문화융합이다. 한국의 특징적인 효도문화 이야기를 오페라라는 장르 속에 담아, 민족이라는 집단의 개별 문화요소의 특수성에 인류보편성을 담아낸 것이다. 물론 보편성의 함정에 빠져 결국 강대국의 전도사 또는 식민주의의 전도사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음악과 영화 한류와 한국문학과 철학과 사상은 세계의 전쟁과 지구환경위기 속 인류의 생존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평화와 환경, 인류애라는 명제를 토대로 새로운 한류미학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가능하면, 세계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한류는 표상된 “리얼리즘의 승리”와 함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도덕적 영적 인간회복을 향한 생명미학의 구축을 목표로, 지구촌 폭력성과 질병을 폭로하고 평화와 치유를 향한 길을 여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문화연대를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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